<건축학개론> 세 개의 아쉬운(?) 장면




<건축학개론>, 가슴을 오래도록 먹먹하게 만든 영화다. 사실 흠잡을 데가 없는 영화라 평할 수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 아쉬운 점도 많을 것이다. 별로라고 한 사람도 봤고.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끼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는 아쉬운 '장면' 세 개다. 


1. "쌍년이었다고 하던데.."

승민(엄태웅)의 약혼녀가 서연(한가인)과 승민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승민의 첫사랑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한 말이다. 조곤조곤 대화하다 갑자기 나온 "쌍년"이라는 말에 빵터지면서도 황당했다. "쌍년"이라는 말은 이후에도 계속 승민과 서연의 대화에서 등장한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제 3자의 손님에게 "쌍년"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영화를 같이 본 친구가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약혼녀는 처음부터 서연이 승민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눈치챘고 일부러 "쌍년"이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괜한 일이 생길 걸 미리 방지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들으니 갑자기 그 단어를 말한 이유가 납득이 됐다. 결혼을 하려는 상대의 첫사랑이 찾아왔는데 그 첫사랑이 또 엄청 예쁘고 남편이 쫓아다녔다는데 강력하게 끊어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럼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여전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결혼하려는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더라도 왜 승민은 약혼녀에게 첫사랑을 "쌍년"이라고 설명해야 했을까. 그렇게 심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남자와 방에 들어가는 모습이 끝까지 기억에 남아 그렇게 얘기한 것일까.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들놈에게 "쌍놈"이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씀에서 느꼈던 정겨움을 설명한다. 그랬더라도 조금 뜬금 없긴 했다. 


2. "꺼져버려.."

승민(이제훈)이 서연(배수지)에게 하는 대사다. 둘이 본격 연애를 한 것도 아니지만 헤어지자는 말이었다. 이것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들은 강한 말이라서 당혹스러웠는데 극 속 서연 또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아니 얘가 왜 갑자기.. 그리고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이 말 또한 승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승민처럼 쑥맥인 사람들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잘한다. 선배와 함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승민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리고 그는 서연에 대해 온갖 상상을 했을 것이다. 자기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하고, 그렇고 그런 애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기에 서연을 나쁜 애로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미움과 질투심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고백을 할 때 연습했던 것처럼 철저하게 복수를 하는 연습도 마음속으로 다졌을 것이다. 서연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부풀러진 마음 그대로 표현해버렸고 그것이 나와 극 속 서연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승민의 그 대사가 이해가 가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렇게 미움을 부풀려가는 과정을 장면으로 조금만 더 묘사했다면 "꺼져버려"라는 말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3. 나이 든 승민(엄태웅)과 서연(한가인)은 키스하지 말았어야 했다. 

앞서의 두 개가 그래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키스를 한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서연과 승민은 제주도 집에서 마지막으로 키스를 한다. 그 이후로 서연과 승민이 만나는 장면은 없다. 즉 키스가 마지막 장면이다. 키스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어린 승민은 어린 서연과 이미 키스를 했다. 물론 납뜩이는 뽀뽀뽀라고 놀렸지만 어쨌든 서로가 기억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대학 시절에 키스를 하기 직전에 실패를 했었다면 나이가 들어 마지막에 키스를 하면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풋풋한 첫사랑 때의 키스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키스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영화가 막장이 되어 약혼을 취소하고 서연에게로 다시 갔다면 키스를 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은 결국 서로가 현실을 따르면서 끝이 났다. 어차피 각자의 길을 갈 것이라면 키스 대신 포옹이 무난했을 것이다. 그런데 키스를 함으로써 아련함이 반감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키스를 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버리면 키스 이후의 장면들을 상상하게 한다. 뭘 상상하는지는 지금 상상했으니 알 것이다. 첫사랑의 풋풋함을 말하고 싶은 영화였다면 키스는 참았어야 하지 않을까. 승민이 못 참은 것인가 엄태웅이 못 참은 것인가 감독이 못 참은 것인가. 감독은 이후에 이 장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전한다. 그냥 포옹으로 끝내자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감독은 첫사랑의 완결을 위해서 장면을 포함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그건 어린 서연과 승민이 입을 맞추지 못했을 때의 얘기다. 


이 세 가지가 아쉬운 점이지만 영화 전체의 아련함에 비하면 충분히 가려지는 정도다. 나에겐 오랜만에 여운에 괴로웠던 영화다. 평범한 이야기가 되느냐 공감하는 이야기가 되느냐는 필름 하나 차이다. 감독은 평범한 모두의 이야기를 공감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아쉬운 점은 접어두자. 




<건축학개론> 경험하지 않은 추억을 돌려주다



누구나 첫사랑을 각색한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영화 속처럼 풋풋한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순수한 사랑을 꿈꾸던 시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멀리서 걸어와도 떨리고 몰래 바라보다 들키면 어쩔 줄 모르고 문자 하나에도 파도처럼 지우고 또 지우고 다시 썼던 기억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이후의 모습들은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우리는 각자가 각색한 이야기를 품고 산다. 


우린 연애도 개론이었어 

순수한 사랑이라는 말은 사실 정의하기 어렵다. 어떤 사랑이 순수할까. 결혼할 때처럼 이런 저런 조건 안 따지고 사람만 보고 사랑하는 것? 그런데 사실 어릴 때 좋아하는 건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거 아닌가. 어떤 게 순수한 사랑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어떨 때나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 성(性)적인 대상이나 그 사람이 가진 것으로 표현되더라도 누군가가 좋아지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상상하는 것이 다르고 기대하는 것이 다를지라도 말이다. 

그럼 왜 첫사랑을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은 사람의 감정이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을 모를 때 커져버린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의 감정이 생각보다 쉽게 변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절대 놓을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덮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 (즉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면서) 조금 덜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도 안다. 연애의 가벼움을 조금씩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첫사랑은, 즉 20대 초반의 감정은 그런 것들을 모를 때다. 마냥 좋고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그냥 좋아한다. 가슴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린 그 마음이 "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가장 설레고, 가장 아픈 것이 첫사랑이다. 처음 겪어보는 일은 어떤 일이나 어렵듯 처음 하는 사랑도 어려우니까.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절을 상징한다. 수업도 새롭고 연애도 처음인 시절. 우리는 그때 연애도 개론이었다.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가다

영화 속 양서연은 현실에 치인다. 미모를 간직하고 의사와 결혼하지만 알 수 없는 문제로 이혼한다. 그리고 제주도로 돌아가려 한다. 이유는 아버지가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 초년생 첫사랑에게 찾아가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그 시절 약속한 것이다. 현실을 잡았지만 결국 깨져버렸다. 아버지는 아프고 쫓았던 현실은 이제 더 이상 필요도 없고 멀어져버렸다. 그때 양서연은 다시 순수했던 시절을 찾는다. 제주도는 자신이 어릴 적 살던 고향이다. 서연은 모든 것을 놓고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모두 쉬게 해줄 곳을 찾는다. 그게 제주도고 순수했던 시절의 승민이다. 서연은 승민이 약혼하지 않았더라면 승민과 다시 만나려고 했을까. 승민은 다시 만났을까. 

그것이 아프든 어떻든 첫사랑의 기억은 마음의 안식처이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은 잊고 있던 안식처를 떠올린다. 


경험하지 않은 추억을 돌려주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과 기억과 추억을 품고 살아간다. 서연이 가지고 있던 건축 모형, 승민이 가지고 있던 CD와 CDP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비록 간직하는 것들은 다를지라도 가끔 꺼내보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서랍 속, 아니면 창고 어디 속, 아니면 기억 어디 속에 잠자고 있는 설렘들. 그 설렘을 다시 꺼내 펼쳐준다. 좋은 영화는 경험하지 않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영화다. <건축학개론>이 그런 영화다. 


덧. 이 영화는 조조에 보지 않는 걸 권한다. 하루종일 먹먹하게 전람회 노래만 듣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가 엔딩장면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수다로 풀지 않으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아련하면서도 살짝 우울한 이 기분. 


[명반] 토이 <4집> - 유희열, 그리고 김연우




토이 4집은 토이 앨범 중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는 앨범이다. 프로젝트 그룹의 개념을 잘 몰랐을 때 토이의 앨범을 듣고 어떻게 이렇게 창법을 다르게 부를 수 있을까, 혹은 도대체 멤버가 몇 명일까 등을 궁금해했다. 정체를 알고나서는 보컬 개개인의 이름에 집중하여 들었다. 정말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 객원보컬로 쓰면서 작곡가의 앨범을 만든다는 생각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발한다. 그러나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 사실 노래가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작곡가와 작사가이기에, 작곡가의 노래를 모아서 앨범을 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토이라는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게 해준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지"가 광고 음악으로 삽입되면서 부터다. 그 전에도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토이의 좋은 음악들을 알려졌지만 "변한 건 없니~" 구절이 광고에 삽입되면서 그 노래가 누구 노래냐, 토이가 누구냐 솔로냐 그룹이냐 등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토이가 유희열이라는 가수 겸 작곡가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부른 사람이 김연우라는 사람인지는 잘 몰랐다. 김연우의 목소리를 토이의 목소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토이의 히트곡(?)들을 부른 보컬이 김연우라는 사실이 드디어 알려지면서 김연우는 유명해졌고, 지금처럼 모르는 사람이 잘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것은 물론 나가수 이후인 최근이다. 
토이 <4집>은 30만장 이상 팔렸다. TV에 거의 나오지 않고 홍보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30만장을 팔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 당시 음반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광고 배경음악은 효과가 가장 뛰어난 홍보방법이다. 음악 프로그램은 그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에게만 홍보가 되지만 광고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든 노출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인 것은 직접적인 홍보 전략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 당시 그런 프로모션이 활성화 되진 않았었다. 노래도 좋았고 그 노래를 아는 사람 혹은 토이를 아는 사람이 배경음악으로 썼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렇게 토이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젊은 사람 중 유희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토이 <4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거짓말 같은 시간'이다. 곡의 짜임새가 좋고 잔잔한 부분과 클라이막스 부분을 모두 완벽하게 불러내는 김연우가 곡의 완성도를 더 살렸다. 김연우가 아니면 만들지 못했을 완성도다. 그 외에도 유희열의 방송 프로그램 제목으로도 쓰이는 '스케치북'과 어린아이 김재홍과 듀엣으로 부른 '새벽그림'은 잔잔하고 착한 감동을 주고, '여전히 아름다운지'와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는 토이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토이의 노래는 다소 처지는 감도 없지 않지만 잔잔하게 끌어내는 감정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 사실 토이의 다른 앨범의 곡들은 타이틀을 빼고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곡을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이 앨범만큼은 소장가치가 있다. 

  

앨범 수록곡 (*         유효 트랙)

  1. A Night In Seoul
  2. 거짓말 같은 시간 
  3. 구애
  4. 새벽그림
  5. 여전히 아름다운지
  6.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7. 혼자 있는 시간
  8. 못다한 나의 이야기
  9. 길에서 만나다
  10. 저녁식사
  11. Please
  12. 스케치북
  13. 남겨진 사람들
  14. Lullaby

유효 트랙 비율 = (8/14)


앨범 구매 욕구

  1. 오래전 테이프로 샀어
  2. .
  3. CD를 산다면 1순위
  4. 음원은 구매하고 싶어
  5. 멜론 DCF로만 들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