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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 아름다울지라도 그리움 속에서만 살 순 없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9. 1. 23:27

제목 : 가을로

감      독: 김대승
장      르: 드라마, 멜로
등      급: 15세 이상
러닝타임: 01:48:00


1995년 6월 29일. 결혼준비를 위해 함께 쇼핑을 하기로 약속을 한 현우와 민주.
현우가 일하는 곳에 찾아온 민주에게 현우는 일이 남았다며, 혼자 가기 싫다고 기다리겠다던 그녀의 등을 떠밀어 억지로 백화점을 보낸다.
“민주야, 금방 갈게!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일을 끝낸 현우가 급한 걸음으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백화점 앞에 도착한 순간.
민주가 지금 현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백화점이 처절한 굉음과 함께 그의 눈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십년 후, 지금.

누구보다 소중했던 민주를 잃어버린 지울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자신이라는 자책감으로 현우는 지난 십 년을 보냈다.
항상 웃는 얼굴의 해맑은 청년이었던 현우는, 이젠 그 웃음을 잃어버린 차갑고 냉정한 검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론과 압력에 밀려 휴직처분을 받고 상실감에 젖어있던 현우에게 한 권의 다이어리가 배달된다.
"민주와 현우의 신혼여행"이란 글이 쓰여있는 다이어리. 민주가 죽기 전 현우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현우는 민주가 준비한 마지막 선물, 다이어리의 지도를 따라, 가을로, 여행을 떠난다.

민주가 현우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 길을 따라 걷는 현우의 여행길에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세진(엄지원)이 있다.
자꾸 마주치는 우연으로 동행을 하게 된 그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현우가 민주가 사랑하는 그 ‘현우’ 라는 것을.
그리고 세진은 백화점이 무너진 그때, 민주와 같은 곳에 매몰되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현우와 민주의 가을로의 동행이 시작된다.

출처: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base&id=11323

이 영화는 보고 나서 리뷰를 쓰기가 힘든 영화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괜찮았는데 뭔가가 부족한 그런 느낌이었다.
충격적인 삼풍백화점 붕괴, 현우와 세진의 동행, 오버랩되는 민주의 나레이션. 민주와 함께 갇혀 있었던 이와 민주의 기억을 따라 동행한다는 기발한 시나리오.

이 영화에는 상처받은 두 인물이 나온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의도치 않은 자기 잘못으로 잃은 현우다. 그 때 백화점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유난히 백화점에 가기 싫어하는 민주 얘기를 들어줬더라면. 그는 남은 인생을 후회로 살아간다. 민주 부모님께는 고개도 들지 못한다. 그는 민주 부모님께 그 때 자신의 잘못 아닌 잘못을 말할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붕괴되는 현장에 내버려둔 상처를 안고 그는 살아간다.

세진 또한 민주를 남겨두고 혼자 살아남았다. 얼굴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민주와 얘기를 하며, 쉽게 포기하고 죽어버릴 수 있었던 상황을 버텼다. 외롭고 무서웠던 자신에게 민주는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해주며 세진에게 힘을 주었지만 결국 먼저 가버리고 만다. 가장 힘든 순간에 자신의 위로가 되어준 사람은 죽어버리고 자신 혼자 살아남는다. 매몰된 순간의 공포와 혼자 살아남은 미안함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민주는 죽었지만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밝은 인물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며, 나머지 둘에게 죽음으로 상처를 준 인물이다. 영화의 중반부터 민주는 인물이 아닌 자연으로 대치된다. 그녀의 여행의 기억이 그녀가 된다. 결국 같은 경로의 여행이 각각의 사람들에 의해 세번 반복된다. 현우와 세진은 자연이 되어버린 그녀를 만난다.

영화 속 수려한 풍경은 영화의 주제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좋은 화면을 담으려고 노력한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자연은 죽어버린 민주다. 현우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혹은 슬픈 표정으로) 일관한다. 민주와 함께 있어야 했던 이 길에 민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 곁에 있다. 세진이라는 인물로 어색하게 채워진 상실감과 아름다운 풍경을 대비시키려 했지만, 아름다운 화면을 위한 노력이 보임으로써 현우에게로 몰입하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세진에게 몰입할 수도 없다. 결국 풍경을 본다. 풍경과 영화 속 인물은 분리된다. 현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세진이 되어, 현우와 함께 서서 그 풍경을 본다. 아름다운 화면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진 이유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질 수 없는 (상실감보다 더 큰) 죄스러움. 그러나 민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그 상실감과 죄스러움을 채우거나 잊기 위해서가 아니다. 못 견디게 그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거기서 평생을 살 순 없다. 언젠간 다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시멘트가 칠해진 도시로 와야 한다. 자연으로 대치된 민주를 평생 안고 살아갈 순 없다. 가을은 우리에겐 아름답지만 잎에게는 영양분이 차단되는 분리, 상실의 계절이다. 민주의 기억이 담긴 가을길은 현우와 세진에게 민주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그림이지만, 동시에 분리되고 떨어져야 하는 풍경이다.



-다른 리뷰-

씨네21 - 남다은 (영화평론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42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