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키워봐서 알아요(Shhhhh)" - 개를 키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혹스러움

감독 : 이우정



우리는 얼마나 성(性)적으로 올바른가. 성(性)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성적 취향'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성적 기호는 남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성적으로 올바른 것'은 설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굳이 '성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말하라면 자신의 성적 취향에 따라 행동을 하였을 시, 그 행동이 선택권이 없는 타인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미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새디스트와 매조히스트의 만남은 그들이 만나서 즐겁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강간은 당연히 안 된다. 강간 또한 성적 취향이 될 수는 있지만(주로 보는 음란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대본대로 짜여진 강간물을 보든 안 보든 상관 안하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건 상식적인 이야기다.


성적 취향은 취향으로만 가지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모든 취향은 그것을 실현시키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욕구를 적절히 제어하여야 할 것이다.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는 갑자기 어린 동성 제자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선생이 주인공이다. 동성애와 소아기호증이 합쳐진 것이다. 영화 초반에 그 여자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는데 이를 통해서 그 여자가 이전부터 동성애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수업시간에 계속 화장실을 가고 싶어하는 그 학생을 언짢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제자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분명 이성간의 사랑과는 느낌이 다르지만, 성(性)적 뉘앙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비정상으로 볼까봐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 학생을 어떻게 해볼 정도의 통제 불가능한 감정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도 그 감정에 당혹스럽다.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리고 도대체 그 감정이 어떻게 끝이 날지도 알 수 없다. 영화에서는 여자의 감정처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여러 암시들과 암시가 될 수 있는 상황들을 통해 세련되게 감정의 변화를 묘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성애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일부 상담심리학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동성이 좋아지는 순간 우리는 굉장히 당황을 한다. 물론 완전 양성애자나 완전 동성애자라면 불안해하는 감정은 없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카테고리의 사람에게 성적 충동을 느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개를 키워보는 것과 상관없이 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느꼈던 당혹스러움만큼이나 영화를 보던 관객들도 윤곽이 드러날 때마다 '설마..'하는 당혹감에 빠진다.
지우개로 개들의 교미 장면을 묘사하며 말하는 아이의 천연덕스러운 대꾸는 영화 속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뭐 그리 놀라냐'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