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경험하지 않은 추억을 돌려주다



누구나 첫사랑을 각색한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영화 속처럼 풋풋한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순수한 사랑을 꿈꾸던 시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멀리서 걸어와도 떨리고 몰래 바라보다 들키면 어쩔 줄 모르고 문자 하나에도 파도처럼 지우고 또 지우고 다시 썼던 기억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이후의 모습들은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우리는 각자가 각색한 이야기를 품고 산다. 


우린 연애도 개론이었어 

순수한 사랑이라는 말은 사실 정의하기 어렵다. 어떤 사랑이 순수할까. 결혼할 때처럼 이런 저런 조건 안 따지고 사람만 보고 사랑하는 것? 그런데 사실 어릴 때 좋아하는 건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거 아닌가. 어떤 게 순수한 사랑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어떨 때나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 성(性)적인 대상이나 그 사람이 가진 것으로 표현되더라도 누군가가 좋아지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상상하는 것이 다르고 기대하는 것이 다를지라도 말이다. 

그럼 왜 첫사랑을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은 사람의 감정이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을 모를 때 커져버린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의 감정이 생각보다 쉽게 변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절대 놓을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덮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 (즉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면서) 조금 덜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도 안다. 연애의 가벼움을 조금씩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첫사랑은, 즉 20대 초반의 감정은 그런 것들을 모를 때다. 마냥 좋고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그냥 좋아한다. 가슴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린 그 마음이 "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가장 설레고, 가장 아픈 것이 첫사랑이다. 처음 겪어보는 일은 어떤 일이나 어렵듯 처음 하는 사랑도 어려우니까.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절을 상징한다. 수업도 새롭고 연애도 처음인 시절. 우리는 그때 연애도 개론이었다.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가다

영화 속 양서연은 현실에 치인다. 미모를 간직하고 의사와 결혼하지만 알 수 없는 문제로 이혼한다. 그리고 제주도로 돌아가려 한다. 이유는 아버지가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 초년생 첫사랑에게 찾아가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그 시절 약속한 것이다. 현실을 잡았지만 결국 깨져버렸다. 아버지는 아프고 쫓았던 현실은 이제 더 이상 필요도 없고 멀어져버렸다. 그때 양서연은 다시 순수했던 시절을 찾는다. 제주도는 자신이 어릴 적 살던 고향이다. 서연은 모든 것을 놓고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모두 쉬게 해줄 곳을 찾는다. 그게 제주도고 순수했던 시절의 승민이다. 서연은 승민이 약혼하지 않았더라면 승민과 다시 만나려고 했을까. 승민은 다시 만났을까. 

그것이 아프든 어떻든 첫사랑의 기억은 마음의 안식처이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은 잊고 있던 안식처를 떠올린다. 


경험하지 않은 추억을 돌려주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과 기억과 추억을 품고 살아간다. 서연이 가지고 있던 건축 모형, 승민이 가지고 있던 CD와 CDP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비록 간직하는 것들은 다를지라도 가끔 꺼내보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서랍 속, 아니면 창고 어디 속, 아니면 기억 어디 속에 잠자고 있는 설렘들. 그 설렘을 다시 꺼내 펼쳐준다. 좋은 영화는 경험하지 않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영화다. <건축학개론>이 그런 영화다. 


덧. 이 영화는 조조에 보지 않는 걸 권한다. 하루종일 먹먹하게 전람회 노래만 듣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가 엔딩장면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수다로 풀지 않으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아련하면서도 살짝 우울한 이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