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리아 Kimjongilia" - 진부한 인터뷰로 채워진 다큐멘터리


감독: N.C. 하이킨 HEIKIN 




부산국제영화제 PROGRAM NOTE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꽃의 이름에서 따온 영화제목 [김정일리아]는 북한의 교도소, 기근, 그리고 억압에서 살아남은 – 현재 탈북하여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록자료와 정치적 선전, 그리고 북한의 일상 재연 등을 혼합하여 어떻게 전체주의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를 보여준다."





프로그램 노트를 보고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단선적이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중간에 졸기도 했다. 시간과 돈이 얼마나 아깝던지.)
"어떻게 전체주의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를 보여"주기를 기대했다면, 눈을 좀 더 낮추기를 권한다.
영화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탈북자들의 인터뷰',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표현한 행위예술', '지식전달을 위한 북한 역사 개요 동영상'이다.
탈북자들의 인터뷰는 공중파 다큐멘터리 방송보다 수위가 높다. 공개 처형에 대한 언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신문기사에서도 많이 접했던 것이기에 그리 놀랄 정도는 아니다.
행위예술은 괜찮은 편집이었던 것 같다. 
북한의 역사를 소개하는 장면은 오래된 반공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북한의 군가가 나오면서, 김일성 일가의 스토리가 연도별로 전개된다. 새로운 것은 없었다.


들어가기 전에 기대한 것은? 나는 북한이 저런 처절한 상황임에도 왜 사회가 붕괴되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북한 정권이 교묘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통치를 이어가는지, 그 이유를 종합적인 시각으로 설명하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탈북자의 의견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제 3국의 사람이 직접 북한을 방문면서 관찰한 것과 인터뷰한 것을 세련되게 섞어가며 신랄하게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내용일 것임을 기대하고 자리에 앉았다. 물론 그 기대는 지나친 것이었고, 영화 수준은 평균도 안 되었다. 내가 기대한 내용은 커녕, 다큐멘터리 자체도 그리 세련되지 못했다.


'김정일리아'와 같은 작품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담아내거나, 아니면 작가의 능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창의적으로 분석하거나, 그것도 안 된다면 (약간 비겁하기도 하지만) 충격적인 장면이라도 넣어서 고발형식을 띄던가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새로운 사실도 없고, 인터뷰는 탈북자들의 인터뷰밖에 없으며 전체적으로 너무 평이하다.


탈북자들은 한국의 작가나 기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상이고, 그들의 인터뷰는 비슷한 내용을 이미 매스컴에서 많이 접했던 것이고,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한 탈북자는 이런 얘기를 한다. 지금 북한을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북한에게 지원만 하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이 정권을 뒤집어 엎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우와, 반공교육 조금만 시킨 초등학생도 이렇게는 답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문제가 간단했으면 왜 북한 정권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가. 찔끔찔끔 지원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것마저 완전히 끊어버리면 혁명이나 폭동이 일어나 스스로 무너질 것인가.


탈북자들은 그 사회를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한가지 사실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탈북자들은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극단의 용기를 가졌거나, 극단의 용기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극도의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이 북한 주민들의 표준이라면, 벌써 북한은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들과 비슷한 고통을 지금도 겪고 있을 북한주민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이 있을까. 탈출과 저항 둘 다 목숨을 거는 일이라,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하루하루 바빠 그러한 상상마저 차단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김정일을 신의 아들로 모시고 있는 것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탈북자들의 증언처럼 살고 있다면, 아사로 붕괴가 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배급중지와 함께 주민들의 통제를 포기했거나 하는 상황 하에 있어야 할텐데 별다른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실제 북한의 생활 수준 분포는 지역에 따라 어떤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평범한 사람들은 어느정도 나라에서 통제하고 있는 것인지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이미지만 보아왔다. 먹을 것이 없어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먹는 아이들, 앙상하게 말라 병에 걸려도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 거지 같은 참상의 아이 엄마, 그러면서도 김일성이 죽었다고 하면 땅을 치고 진심으로 울어대 답답함을 자아내는 한복입은 아낙네들이 우리가 가진 이미지 아닌가. 너무나 같은 이미지만 봐온터라 다른 이미지는 상상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가 아닌 실제 생활수준은 어떤지(아프리카의 최빈국 수준인지, 그것보단 덜한지), 북한주민들의 머리 속엔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지, 특히 다른 나라 상황을 접하기 용이한 부유층 자제들의 머리 속은 어떤지,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여인들은 진심인지 그런 것들을 알고 싶었고, 그래서 어떻게 "전체주의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보아오던 이미지와 이야기들만을 짬뽕하여 만든 촌스러운 반공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볼 때는 유달리 검은 양복의 아찌들이 많았다. 보아하니 지역에서 한 가닥씩 하시는 분들일 것 같았다. 다른 좋은 영화 놔두고 이 영화를 단체로 보러 온 이유가 무엇일까. 나처럼 낚여서 오신 분들 같아 보이진 않고, 혹시 자신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서 온 분들일까. 앵무새 같은 영화에 앵무새처럼 분노하기 위해서 말이다.




덧.
나오는 길에 어디 미주 한인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카메라나 녹음기 공포증이 있어서 처음에 거절했다가 계속 따라 오시길래, 몇마디 했는데 지나가고 나서 너무 부끄러웠다. 영화 참 별로다 라는 말을 돌려서 말하려다보니, 헛소리를 내뱉었다. 맘편하게 말할 수 있으니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