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 반 잔 아쉬운 한 병의 낮술


소주는 한 병이 일곱 잔 반이다. 이 반 잔 때문에 몇 명이서 먹더라도 아쉽다.
'낮술'은 술과 여자라는 소재로 혁진이 한 잔 한 잔 털어 넣듯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또 한 잔 털어넣고 나서야 이 쓴 걸 왜 먹는지 찌푸리지만, 성스러운 의식처럼 잔을 부딪치면 나도 모르게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밖에 없다. 어디서나 술을 권하는 사회에서 진짜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한국에서 술은 악수와 같다.
술만 먹으면 일이 꼬이는 혁진은 한사코 술을 거부하려 하지만, 그 노력은 적극적일 수가 없다. 그 제스추어는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거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럼 여자도 비슷한가. 무엇인가 낚이고 있다는, 날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끝까지 혹시나)하는 마음에 여자에 끌려가는 게 남자다. 술과 똑같이 어쩔 수 없이 내민 손을 잡게 되지만, 그것은 사회적 압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상상에서 오는 것. 거절할 수 없는, 그러나 상반된 이 두 가지를 감독은 절묘하게 엮는다.

혁진의 심리를 한 장면으로 표현하면 무엇이 좋을까. 아마 친구의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한 '경포대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 한 잔에 컵라면 먹기'일 것이다. 친구가 말한대로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을 하는 건지, 그냥 샀으니까 어쩔 수 없이 먹으면서 기분 좋다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건지 하는.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혁진의 약간은 어색한 연기. 심리가 요동치는 소심남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 터.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가 방향성이 없어서인지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반 잔만 더 있었으면 딱인데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굿. 말 한마디 걸 일도 없지만 내 옆에 예쁜 사람이 앉길 바라는 그런 심리묘사들은 굿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