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 20년간의 추적, 그 자체가 영화다


가끔 자신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내 인생 전체를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면 어떤 장면이 들어가게 될까. 누가 조연으로 나오고, 누가 스쳐지나가는 역으로라도 나올까. 별 몇개의 평점을 받을까.
한 사람을 20년동안 쫓아다니며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가 있다. 주인공 이름은 '르네'다.
그는 교도소를 들락날락 한다. 그러나 그는 영민하며 글 쓰는데 재능이 있어 책까지 출판한다.

영화를 보면서 든 의문은 왜 하필 수많은 사람중에 그를 20년동안 추적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다.
무작위로 선택한 것이라면 운이 정말 좋았다. 그는 영화로 만들기에 적당한 플롯의 인생을 산다.
주인공에 대한 정을 느끼기에 충분하게 생각이 깊고 재능이 있다.

어떤 사람의 인생도 그의 인생을 20년간 추적하면 영화로 만들만큼의 재미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할거리를 던질 수 있을까.
르네가 아니었더라도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

한사람의 일회적 인생을 특별하다 평범하다 의미있다 의미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영화로 만들었을 때 관객의 반응이 천차만별일 것은 분명하다.

감독은 원래 여러 비행청소년들을 상대로 TV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한다.
그 중 르네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오랫동안 찍고 싶었고, 그렇게 이어져온 게 20년이다.
결국 자금 사정으로 20년에서 끝낼 수밖에 없었는데, 다큐멘터리 감독의 눈에 처음부터 르네는 특별하게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일생은 카메라를 들이댔기에 가장 특별한 인생이 되었다.
어느 누가 자기의 실제 인생을 리얼하게 카메라에 담아 영화로 만들 수 있겠는가.
인물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는 대역을 쓰거나 미디어에서 찍은 걸 이리저리 편집해서 만든 것 아닌가.
그는 영화같은 인생을 산 정도가 아니라 인생이 곧 영화가 되었다.

르네는 영화 중간 인터뷰어와 사랑에 빠진듯한 멘트를 한다.
감독은 GV시간에 르네에 대해서 한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르네는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비천한 자기 인생에 카메라라는 시선을 놓지 않은 인터뷰어를 사랑할 수 있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 시선을 놓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인생을 반영구적으로 기억하려 한다는 것.
르네는 따로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지만, 인터뷰어인 감독에게도 감정이 생겼을 것이다.

그의 인생에 카메라가 따라다니지 않았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그 때도 책을 쓸 수 있었을까.
더 극단적으로 가지는 않았을까.
인터뷰는 그냥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속을 알기위해 던지는 질문은 그를 질문 이전과 다른 상태로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그에게 인터뷰(inter-view)는 인터뷰어와의 인터액션(inter-action)이었고, 세상과 통하는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였다.  
그에게 인터뷰가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그의 인생의 일부가 된다.
영화는 그의 인생을 담은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 녹아든 카메라의 시선을 담은 것이다.

제작비 사정으로 20년에서 영화는 끝난다. 
더 이상 카메라는 그를 따라다니지 않을 것이고, 엄마 젖을 떼듯 그는 영화로부터 떨어져나간다.
그는 카메라 대신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자아 이상(ego ideal)과 함께 편집되지 않는 남은 인생을 살 것이다. 


감독: 헬레나 트레쉬티코바
상영시간: 83분
관람일자: 2008년 10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