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홍상수 감독) - 잘 알지도 못하면서

1-1. 열에 아홉하고도 남은 숫자의 아홉정도는  자신의 꾸밈 없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의 모습은 자신을 의식하는 자신이다. 유일하게 꾸밈 없이 볼 수 있는 방법은 카메라를 위치하고 촬영하는 것이지만, 그 또한 카메라를 의식하기 때문에 진짜 자신의 평소 모습이 아니다. 당사자가 알지 못하게 찍은 화면이 유일하지만 그것은 범죄이거나, 극히 드문 경우다. 결국 열에 아홉하고도 남은 숫자의 아홉 정도는 자신을 상상 속의 모습과 거울 속의 모습으로만 인지하고 살아간다.


1-2. 타인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는 타인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을 인식 할 수 있는가. 타인이 다른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완전히 혼자라고 의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몰래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이 또한 범죄이거나 극히 일부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우리가 보는 타인의 모습의 열의 아홉 반은 다른 타인을 의식할 때의 행동 모습이다.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타인의 모습은 타인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창문 등을 통해 관찰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완전이 독립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으며, 행동할 당시는 타인이 없음을 가정하지만, 언제라도 타인에게 발견될 수 있는 일시적 상태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완전히 홀로일 때의 행동과는 조금 다르다.)


1-3. 그래서 우리는 타인이 없을 때 행동하는 우리 개개인의 모습들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나마 비슷한 상황을 재현해 낼 수 있는 곳은 영화이다. 카메라가 너무나 뻔한 위치에 있음에도 오히려 그렇기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연기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타인이 없는 곳에서의 개인의 행동을 관찰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감독의 역량이 매우 뛰어나야 한다. 1-1, 1-2 에서처럼 타인이 없는 곳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밀한 사고 실험이 필요하다.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그러한 장면을 연출해 낼 수 있다면, 그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 오히려 어색할 수 있다. 우리는 한번도 타인이 혼자 있을 때의 행동을 관찰한 적이 없고, 자신이 혼자 있을 때를 관찰한 적도 없다. 타인이 타인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만 관찰이 용이하다고 할 때, 혼자 있을 때의 행동을 연출한 장면은 오히려 어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그러한 장면을 봤을 때 생경한 모습에 순간 어색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저것이 응당 혼자일 때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실제와 닮았는지 알 수 없지만.



2. 영화에선 끊임없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한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답을 내 놓지만, 행동적 결론은 섹스이다. 그럼에도 묻는다, 섹스 다음으로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