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레논 컨피덴셜 (The US vs John Lennon) - 평화의 기회를 노래한 음악가

비틀즈를 좋아한다. 그리고 존 레넌 보다는 폴 매카트니를 더 좋아한다. 여태까지 가장 많이 들었고, MP3 플레이어에 한 곡만 넣을 수 있다면 선택은 'Let It Be'이다. 이 곡은 매카트니가 작곡했다. 그래서 매카트니를 더 좋아한다.

비틀즈를 좋아했지만 그들의 음악만 들었다. 음악 외의 이야기거리는 어느 가수나 그리 관심있게 보지는 않는다. 음악 속에 그들의 스토리가 스며있기에 음악 외적인 것을 많이 알면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지만 일일이 찾아서 그 글들을 읽을만큼 열정이 있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존 레넌의 정치적인 활동(음악정치)을 다큐멘터리화 하였다. 그 당시의 방송 화면들을 모아서 그의 음악을 적절히 믹싱하고 존 레논을 알던 인물들의 인터뷰를 더하는 전형적인 일대기 영화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처음엔 망설여졌지만, 항상 매카트니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존 레넌이 어떤 사람이었나를 알고 싶었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 대해선 피살 당했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영화는 충격이었다. 보고 난 뒤에는 존레넌(과 오노 요코)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음악가가 음악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도 되는지는 한국에서도 논쟁거리다.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음악가의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색깔을 음악에 담는다면 그 영향력은 더욱 크다. 정수라가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면 국가는 고맙다. 이 노래를 들으면 하늘에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는 정말 희망찬 국가에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반면 민중가요를 부르던 때는 노래만 들어도 민중들이 받는 억압에 대한 울분과 민주에 대한 열망이 솟았을 것이다.
요즘에야 정치색을 넣은 음악이라고는 선거기간 때 가사를 바꿔 '정치인'을 응원하는 노래들 뿐이다.

존 레넌은 음악가이면서 정치가였다. 그는 국회 대신 무대에 섰다.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말했고, 노래로 표현했다. 그의 음악은 그의 정치적 삶 없이는 제대로 들을 수 없다. 멜로디로 환원 불가능한 음악이다. 어떻게 들으면 사회주의를 노래하는 것 같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단 한가지 '평화'이다. 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미국 정부와 그는 끊임없이 싸웠다. 국가에 반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은 국가에 보조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보다 진정성이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체게바라 얼굴이 찍힌 티셔츠처럼 혁명을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것은 곧 혁명이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버렸지만 그는 세상에 평화를 주고 싶었다.

한국 대중 가요에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나올 수 있을까. 평화라는 단어가 지금은 너무 촌스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평화라는 단어는 뺀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 같은 세련된 노래를 방송에서도 들을 수 있을까. 평화는 사실 정치색이 없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평화이다. 그러나 '평화'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가 그것이 유한한 것이고 한시적인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는 존 레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게 하고, 그의 삶을 다시 볼 수 있게 하고, 그의 평화를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이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람은 평화를 노래했다. 그리고 그 대중 중 한명인 나는 어제도 오늘도 기타를 들고 그의 평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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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리뷰-

씨네21 이현경 평론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52405

리얼 포크 블루스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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