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1집> - 융화되기 전의 그들


패닉 1집의 수작은 '달팽이'와 '왼손잡이', 그리고 기타 초보들을 위한 노래 '기다리다'이다. 사실 이 세 곡을 위한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간간히 패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엔 '아무도'를 들어본 사람이 간간히 있고, 나머지 곡들은 그야말로 듣보잡 수준. '안녕'이란 곡 또한 수작이지만 많이 알지 못한다.


표절시비가 붙긴 했지만 90년대 중반의 명곡 중 하나라 생각되는 '달팽이'는 지금 들어도 수작이다. 이적의 넘사벽 작사 실력은 바다를 향해 조금씩 기어가는 달팽이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욕조에 앉아 허망함과 우울함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욕조벽을 타고 있는 저 달팽이는 언젠간 바다에 도달하겠지. 그러길 바라.."
달팽이에 투영된 나는 그게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알지만, 머리 속엔 바다를 향하는 달팽이를 그린다.


'왼손잡이'는 사사로운 일에까지 좌우 칼날을 드러내는 요즘에 발표되었다면 아마 좌파 노래라고 불렸을지도 모르겠다. 기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난 왼손잡이야~'라는 가사가 '난 좌파야~'라는 가사로 들리지 않았을까. 어찌됐든 왼손잡이는 90%의 오른손잡이 속에서 살아가는 10% 소수를 위한 노래다. 노래 가사를 유심히 들어보면 좌파와는 상관이 없고, 남들보다 조금 더 개성있는 성격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노래다. 학교에서 튄다고 선생들에게 차별받고 처벌받는 일이 많았던 그 경험이 이 노래를 쓰게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겨우 왼손잡이 정도로밖에 남들과 다르지 않으니 내게 부적격자라는 딱지를 붙이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뭐.. 이러튼 저러튼 내가 알기로 이적은 오른손잡이다.


'기다리다'는 기타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노래다. 코드를 잡는 곡이 아님에도 배우기가 쉽고, 앞부분만 쳐줘도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초보에게 권해진다. '기다리다'는 사실 가사가 그렇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노래다. 가사는 어찌보면 평범하고 어찌보면 심오하지만 이 노래는 가사보다는 기타연주 소리와 나긋한 보컬이 조화를 이뤄 집중하게 만드는 곡이다.
 

명곡이라고 여겨지는 이 세 곡은 모두 이적의 솔로다. 김진표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다. 랩은 물론이고 다른 곡에 가끔 등장하는 화음도 없다. 그런 반면 '다시 처음부터 다시'라는 곡은 김진표의 솔로곡이다. 이적의 보컬은 없다. 패닉의 가장 유명한 곡은 '달팽이'라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 김진표는 없다. 1집이 나오던 시기, 이적과 김진표는 노래 속에서 따로 놀았다. 김진표의 랩이 섞인 노래도 랩과 노래가 따로 노는 느낌이다. 느린 발라드나 포크 곡에는 김진표가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다. 따로국밥을 시켜서 섞어버린 이 앨범은 그래서 미완성이다. 이적과 김진표의 융화는 2집에서 일보 전진하며 3집에서 완성된다. 그때서야 음악과 앨범 모두 완성도가 올라간다. 달팽이, 왼손잡이, 기다리다 등 명곡들이 있음에도 이 앨범이 아쉬운 이유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초기앨범에서 '아이들'이 서태지의 백댄서 역할을 했듯이, 김진표 또한 뚜렷한 역할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앨범 수록곡 (*         유효 트랙)

  1. Intro : Panic Is Coming
  2. 아무도
  3. 너에게 독백
  4. 달팽이
  5. 다시 처음부터 다시
  6. 왼손잡이
  7. 더...
  8. 기다리다
  9. 안녕
  10. Outro : 다시 처음부터 다시 (Saxy Reprise)

유효 트랙 비율 = (6/10)


앨범 구매 욕구

  1. 테이프로 갖고 있어요
  2. CD를 산다면 1순위
  3. 음원은 구매하고 싶어
  4. 멜론 DCF로만 들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