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 아름다울지라도 그리움 속에서만 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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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을로

감      독: 김대승
장      르: 드라마, 멜로
등      급: 15세 이상
러닝타임: 01:48:00


1995년 6월 29일. 결혼준비를 위해 함께 쇼핑을 하기로 약속을 한 현우와 민주.
현우가 일하는 곳에 찾아온 민주에게 현우는 일이 남았다며, 혼자 가기 싫다고 기다리겠다던 그녀의 등을 떠밀어 억지로 백화점을 보낸다.
“민주야, 금방 갈게!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일을 끝낸 현우가 급한 걸음으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백화점 앞에 도착한 순간.
민주가 지금 현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백화점이 처절한 굉음과 함께 그의 눈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십년 후, 지금.

누구보다 소중했던 민주를 잃어버린 지울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자신이라는 자책감으로 현우는 지난 십 년을 보냈다.
항상 웃는 얼굴의 해맑은 청년이었던 현우는, 이젠 그 웃음을 잃어버린 차갑고 냉정한 검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론과 압력에 밀려 휴직처분을 받고 상실감에 젖어있던 현우에게 한 권의 다이어리가 배달된다.
"민주와 현우의 신혼여행"이란 글이 쓰여있는 다이어리. 민주가 죽기 전 현우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현우는 민주가 준비한 마지막 선물, 다이어리의 지도를 따라, 가을로, 여행을 떠난다.

민주가 현우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 길을 따라 걷는 현우의 여행길에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세진(엄지원)이 있다.
자꾸 마주치는 우연으로 동행을 하게 된 그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현우가 민주가 사랑하는 그 ‘현우’ 라는 것을.
그리고 세진은 백화점이 무너진 그때, 민주와 같은 곳에 매몰되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현우와 민주의 가을로의 동행이 시작된다.

출처: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base&id=11323

이 영화는 보고 나서 리뷰를 쓰기가 힘든 영화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괜찮았는데 뭔가가 부족한 그런 느낌이었다.
충격적인 삼풍백화점 붕괴, 현우와 세진의 동행, 오버랩되는 민주의 나레이션. 민주와 함께 갇혀 있었던 이와 민주의 기억을 따라 동행한다는 기발한 시나리오.

이 영화에는 상처받은 두 인물이 나온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의도치 않은 자기 잘못으로 잃은 현우다. 그 때 백화점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유난히 백화점에 가기 싫어하는 민주 얘기를 들어줬더라면. 그는 남은 인생을 후회로 살아간다. 민주 부모님께는 고개도 들지 못한다. 그는 민주 부모님께 그 때 자신의 잘못 아닌 잘못을 말할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붕괴되는 현장에 내버려둔 상처를 안고 그는 살아간다.

세진 또한 민주를 남겨두고 혼자 살아남았다. 얼굴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민주와 얘기를 하며, 쉽게 포기하고 죽어버릴 수 있었던 상황을 버텼다. 외롭고 무서웠던 자신에게 민주는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해주며 세진에게 힘을 주었지만 결국 먼저 가버리고 만다. 가장 힘든 순간에 자신의 위로가 되어준 사람은 죽어버리고 자신 혼자 살아남는다. 매몰된 순간의 공포와 혼자 살아남은 미안함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민주는 죽었지만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밝은 인물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며, 나머지 둘에게 죽음으로 상처를 준 인물이다. 영화의 중반부터 민주는 인물이 아닌 자연으로 대치된다. 그녀의 여행의 기억이 그녀가 된다. 결국 같은 경로의 여행이 각각의 사람들에 의해 세번 반복된다. 현우와 세진은 자연이 되어버린 그녀를 만난다.

영화 속 수려한 풍경은 영화의 주제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좋은 화면을 담으려고 노력한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자연은 죽어버린 민주다. 현우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혹은 슬픈 표정으로) 일관한다. 민주와 함께 있어야 했던 이 길에 민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 곁에 있다. 세진이라는 인물로 어색하게 채워진 상실감과 아름다운 풍경을 대비시키려 했지만, 아름다운 화면을 위한 노력이 보임으로써 현우에게로 몰입하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세진에게 몰입할 수도 없다. 결국 풍경을 본다. 풍경과 영화 속 인물은 분리된다. 현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세진이 되어, 현우와 함께 서서 그 풍경을 본다. 아름다운 화면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진 이유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질 수 없는 (상실감보다 더 큰) 죄스러움. 그러나 민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그 상실감과 죄스러움을 채우거나 잊기 위해서가 아니다. 못 견디게 그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거기서 평생을 살 순 없다. 언젠간 다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시멘트가 칠해진 도시로 와야 한다. 자연으로 대치된 민주를 평생 안고 살아갈 순 없다. 가을은 우리에겐 아름답지만 잎에게는 영양분이 차단되는 분리, 상실의 계절이다. 민주의 기억이 담긴 가을길은 현우와 세진에게 민주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그림이지만, 동시에 분리되고 떨어져야 하는 풍경이다.



-다른 리뷰-

씨네21 - 남다은 (영화평론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42278

존레논 컨피덴셜 (The US vs John Lennon) - 평화의 기회를 노래한 음악가

비틀즈를 좋아한다. 그리고 존 레넌 보다는 폴 매카트니를 더 좋아한다. 여태까지 가장 많이 들었고, MP3 플레이어에 한 곡만 넣을 수 있다면 선택은 'Let It Be'이다. 이 곡은 매카트니가 작곡했다. 그래서 매카트니를 더 좋아한다.

비틀즈를 좋아했지만 그들의 음악만 들었다. 음악 외의 이야기거리는 어느 가수나 그리 관심있게 보지는 않는다. 음악 속에 그들의 스토리가 스며있기에 음악 외적인 것을 많이 알면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지만 일일이 찾아서 그 글들을 읽을만큼 열정이 있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존 레넌의 정치적인 활동(음악정치)을 다큐멘터리화 하였다. 그 당시의 방송 화면들을 모아서 그의 음악을 적절히 믹싱하고 존 레논을 알던 인물들의 인터뷰를 더하는 전형적인 일대기 영화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처음엔 망설여졌지만, 항상 매카트니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존 레넌이 어떤 사람이었나를 알고 싶었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 대해선 피살 당했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영화는 충격이었다. 보고 난 뒤에는 존레넌(과 오노 요코)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음악가가 음악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도 되는지는 한국에서도 논쟁거리다.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음악가의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색깔을 음악에 담는다면 그 영향력은 더욱 크다. 정수라가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면 국가는 고맙다. 이 노래를 들으면 하늘에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는 정말 희망찬 국가에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반면 민중가요를 부르던 때는 노래만 들어도 민중들이 받는 억압에 대한 울분과 민주에 대한 열망이 솟았을 것이다.
요즘에야 정치색을 넣은 음악이라고는 선거기간 때 가사를 바꿔 '정치인'을 응원하는 노래들 뿐이다.

존 레넌은 음악가이면서 정치가였다. 그는 국회 대신 무대에 섰다.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말했고, 노래로 표현했다. 그의 음악은 그의 정치적 삶 없이는 제대로 들을 수 없다. 멜로디로 환원 불가능한 음악이다. 어떻게 들으면 사회주의를 노래하는 것 같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단 한가지 '평화'이다. 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미국 정부와 그는 끊임없이 싸웠다. 국가에 반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은 국가에 보조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보다 진정성이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체게바라 얼굴이 찍힌 티셔츠처럼 혁명을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것은 곧 혁명이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버렸지만 그는 세상에 평화를 주고 싶었다.

한국 대중 가요에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나올 수 있을까. 평화라는 단어가 지금은 너무 촌스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평화라는 단어는 뺀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 같은 세련된 노래를 방송에서도 들을 수 있을까. 평화는 사실 정치색이 없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평화이다. 그러나 '평화'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가 그것이 유한한 것이고 한시적인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는 존 레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게 하고, 그의 삶을 다시 볼 수 있게 하고, 그의 평화를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이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람은 평화를 노래했다. 그리고 그 대중 중 한명인 나는 어제도 오늘도 기타를 들고 그의 평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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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리뷰-

씨네21 이현경 평론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52405

리얼 포크 블루스 ashitaka
http://www.realfolkblues.co.kr/695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 세가지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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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감      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장      르: 드라마
등      급:
상영시간: 01:29:00




시놉시스(요약 줄거리)
크리스마스를 앞둔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 여명이 밝아오고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꺼질 무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시작된다. 지역방송국 사장이자 프로그램 진행자인 비르질은 루마니아 혁명 16주년 기념일을 맞아 “1989년 12월 22일 12시 8분, 우리 마을에서도 혁명의 움직임이 있었는가?”라는 주제의 토크쇼를 진행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다.

한편 술주정뱅이 역사 선생 마네스쿠는 토크쇼가 있는 아침, 월급을 받자마자 빚을 청산하느라 빈털터리가 되고, 고장난 TV와 씨름하던 에마노일 할아버지는 여느 해와 같이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를 청탁받는다. 토크쇼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출연진들이 펑크를 내자 비르질은 평소 친분이 있던 마네스쿠와 에마노일 할아버지를 급하게 게스트로 초청한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자 에마노일은 종이배를 접으며 딴 짓하기에 바쁘고, 사회자 비르질은 마네스쿠와 그날 그 시간에 시청 광장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가지고 말도 안되는 실랑이를 벌이는 등 토크쇼는 점점 엉망진창으로 흘러간다.

출처: 씨네21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id=21213

이 영화는 코미디다. '진짜' 코미디 영화는 혼자 봐도 소리내며 웃는 영화다. 그리고 진짜 '좋은' 코미디 영화는 그렇게 웃는 와중에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이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그런 코미디 영화이다.

이 영화가 시사해주는 것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혁명이 일어난 지방에서 떨어진 지역의 소시민들에게 혁명의 의미.
둘째, 혁명이 났어도 달라진게 없는 서민들의 힘든 생활.
셋째, 토크쇼 내에서의 핵심 논쟁 '혁명이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는 물음.

토크쇼의 제목 "그 때 우리 시에서도 혁명의 움직임이 있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첫째와 둘째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애초에 혁명에 따른 큰 변화가 있었다면 그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혁명이 났는데도 달라진게 없는 소도시의 생활이 '여기서도 혁명이 있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라는 지엽적인 '사실'을 따지게 만들었다. 그 때 혁명이 있었으면 어떻고, 없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전히 무기력한 현실은 그 때 이 도시에서는 혁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도시에서도 혁명이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기 위한 것일까.
사실 그 때 시청광장에 누군가가 있었는가라는 주제는 혁명날을 맞이한 지방방송에서 충분히 기획해 볼만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실제 토크쇼가 아닌 '영화'이고, 영화 속에는 감독의 생각이 반영된다고 할 때 토크쇼의 주제는 달라진게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얘기하려고 설정하였을 것이다.

사람은 어떠한 노력 이후 달라진 것이 없으면, 현재를 덮고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눈 앞의 현실보다 과거의 사실을 따지고 든다. 정말 혁명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면, 토크쇼의 주제는 혁명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맞추는게 더 의미 있을 것이다.
빚더미에 시달리는 무기력한 게스트와, 혁명 따위는 상관없이 종이접기에만 몰두하는 게스트와, 그 때 시청 광장에 있었는지만 집요하게 묻는 사회자. 처음부터 의미없는 주제를 던지고, 그와 함께 황당한 인물들을 내비침으로써 냉소적이지만 동시에 귀여운 웃음을 유발시킨다.

첫번째와 두번째 시사점은 다른 리뷰에서 다루고 있고, 내가 그보다 더 잘 다룰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실제 영화 속 토크쇼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독재자가 이미 물러가고 난 뒤에 시위대가 시청 앞에 모였다면 이는 혁명으로 볼 수 있는가?'. '(애매하지만) 시대적 요구에 의해' 기존의 지배집단을 무너뜨리려는 행위가 목적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냈을 때 이를 혁명이라 부른다면, 이 행위와 결과의 전후관계가 뒤바낀 상황도 혁명으로 볼 수 있는가.
시간의 전후 관계가 바껴있다면 사실 그 시위를 혁명의 일부로 볼 수는 없다. 전후 관계가 바뀐 상태에서 인과관계를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위가 없었더라도 이미 독재자는 물러날 상태였고 시위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사회자의 지적대로 그 경우에 시위는 의미가 없다.

시간 관계가 아닌 공간 관계로 따질 수도 있다. 만약 소도시에서 굳이 시위를 하지 않았어도 독재자가 물러날 상황이었다면 이 또한 시위의 의미는 희미해진다. 독재자가 지방의 일부 소도시에까지 시위가 번졌다는 사실을 한번이라도 인지할 수 있었다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소도시에서의 시위는 독립적인 사건이다.

2008년의 촛불시위로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이끌어냈다고 가정해보자. 청계천 광장에서 촉발된 이 시위는 서울의 광화문 광장 뿐 아니라, 대도시 지역에 까지 퍼졌고 결국 재협상을 만들어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 때 광장에서의 시위는 참여하지 않고, 방에서 혼자 촛불을 켜고 구호를 외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자신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제어 욕구가 있다. 제어 욕구란 무엇인가를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켰다는 욕구이다. 정치욕이나 권력욕도 모두 이 제어 욕구에서 나온다. 자기가 응원한 팀이 스포츠 게임에서 이기면 이 제어 욕구를 만족 시킨다. 설사 집에서 가족끼리 응원을 하여 선수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더라도 제어 욕구는 만족 된다. 행위에 따른 결과가 미미하다면 제어 욕구를 만족 시키지 못하게 되고 좌절하게 된다. 촛불 시위를 참가한 사람 중에서는 재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추가협상이라도 이끌어 낸 것에 대해 자신의 제어 욕구를 만족 시킨 사람도 있을 것이다. 토크쇼에 나와 자신은 분명 그 때 시청 광장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마네스쿠 또한 자신이 혁명을 이끌어 냈다는 제어 욕구를 분출하는 것이다. 결국 그 시간에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다는 것이 여러 제보를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제어 욕구를 위해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구성원의 행위는 사회적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회적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건들도 있다. 결과를 보고 그 원인을 따질 때 원인에서 배제된 사건들을 일컫는다.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특정 사건을 위한 특정 행위로서의 의미는 없다.

영화 속 사회자가 집요하게 묻는 "그때 거기 (독재자가 퇴진하기 전) 있었습니까?" 하는 질문은
첫째, 그 때 거기에 없었기 때문에, 독재자의 퇴진에 우리가 영향을 못 미쳤기 때문에, 달라지지 않은 팍팍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냐는 것과
둘째, 그럼에도 자신들이 혁명을 이끌어냈다는 제어 욕구에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담고 있다.

혁명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영감쟁이와 자신도 혁명에 동참했다고 우기는 빚쟁이와 의미없는 과거 검증에만 집요하게 매달리는 사회자를 통해 감독의 위트 섞인 냉소는 드러난다.


*다른 리뷰
씨네 21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49662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1&article_id=49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