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자들의 도시 - 소설의 '재현'은 좋았으나 '재구성'은 아쉬운 영화




혹자는 올해 본 최악의 영화라고 한다. 혹자는 괜찮았다고 한다. 혹자는 소설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고 하고, 혹자는 나름 칭찬할만큼의 각색이었다고 한다.
소설이 워낙에 인상깊었기에 영화제작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설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한 장면씩 떠올릴 수 있었는데, 소설의 재현이라는 측면은 괜찮았던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며 그렸던 화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배우들도 적절하였다.
다만 소설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소설을 영화화 할 때 조심해야 될 것은 소설일 때는 괜찮은 것이 영화일 때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눈먼자들의 도시는 원작에서는 소설이기에 허무하게 끝나도 되지만, 영화도 똑같이 끝을 맺으면 관객들은 속은 느낌이 든다. 여운이 길게 남도록 (꼭 극적으로 끝을 맺을 필욘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 소설과는 다른 장치를 집어 넣었어야 했다.
소설은 눈이 멀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되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떻게 눈이 멀고, 어떻게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필요없다. 도시가 눈이 멀면 어떻게 변하는지 묘사한 것만으로도 노벨상을 받을만했다.
그런데 영화는 다르다. 소설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으니 극적 긴장이 고르지 못했다. 너무 빨리 절정이 찾아와 느슨해졌다. 긴장을 조일 수 있는 적절한 요소가 없었다. 소설은 독자의 긴장상태에 따라 페이지의 속도가 달라지지만, 영화는 모든 장면이 똑같이 흘러간다. 그래서 극적 긴장의 배치가 중요하다.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는 그 점이 아쉬웠다.
나머지는 괜찮았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더 가진다고 하더라도 천국은 오지 않지만, 그 중 한가지만 잃어도 지옥은 올 수 있다.
영화는 그 시사점만큼은 확실하다.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우린 액션배우다 - 유쾌한 인간극장

몸이 움직일 땐 말이 필요없다. 그들은 대사가 거의 없다. 몸으로 연기한다. 진정한 '액션'배우들이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마치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다. 모든 제약을 없앤 유쾌한 인간극장?
영화는 내내 유쾌하다. 그들 자체가 유쾌하기 때문이다. 정병길 감독의 센스넘치는 편집이 또한 유쾌함을 더한다.

액션스쿨에 지원하는 매 기수마다 그렇게 재밌는 사람들만 들어오는 걸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관객과 거리가 가까운 다큐멘터리 영화다. 

故 지중현 감독의 장례 장면은 그 이외의 장면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죽음과 대면하고 사는 스턴트맨의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준다.

유쾌한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 그러나 그 이면에 숨겨진 '액션배우'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이렇게 재치있게 풀어가는 영화는 드물 것이다.



감독: 정병길

필승 Ver 2.0 연영석 - 구성에서의 아쉬움을 느끼기엔 현실이 너무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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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영화다. 그 중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영화다. 영화는 연영석의 인터뷰와 공연 장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장 장면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의외로 투쟁장면에서 노래 부르는 연영석의 모습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든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대충 구성이 그려진다. 이 영화의 목적은 연영석을 배경음악으로 비정규직의 차별과 투쟁을 필름에 담는 것이다.

영화는 크게 연영석의 삶 부분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장면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두 갈래가 그렇게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직접 담으면 관심을 끌 수 없기에 연영석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모습을 중심으로 연영석을 양념으로 넣거나, 연영석의 삶과 세상을 향한 투쟁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면 영화가 덜 분산됐을 것이다. 연영석의 모습과 비정규직의 투쟁이 적절히 오버랩이 되지 못한 것은 연영석과는 완전히 분리된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연영석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현실의 비장한 투쟁을 더 극적으로 그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연영석은 없다. 연영석이 현장에 참여하는 모습을 더 많이 그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노래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나왔다면 더 쉽게 연영석의 노래에 공감할 수 있었을 듯하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현실을 현실감있게 담은 점은 좋았다. 비정규직에 관한 소식을 뉴스, 신문 기사로만 보고 TV 다큐멘터리로만 보는 것과 이렇게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영화는 TV 다큐멘터리보다 더 소수의 사람이 본다. 그러나 영화관에 찾아와서 돈을 내고 보기에 애정은 보장되어 있다. 불을 끄고 화면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보다가 리모콘을 돌리거나 끌 수 없다. 당연히 더 몰입해서 보며 TV로 봤다면 느낄 수 없는 걸 느낄 수 있다. 소수일지라도 영화를 본 사람들은 비정규직 문제가 능력없는 자들의 떼쓰기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KTX 여승무원 문제, E랜드 문제, 코스콤 비정규직 문제, 모두 메이저 언론사에서는 외면하던 것이다. 너무 길게 끈다고 오히려 반감을 살만한 투쟁들이다. 조금만 양보하면 다수의 사람이 부족하게나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 그 조금을 허락하지 않는다. 양보하지 않기에 '쟁'취하기 위한 싸움('투')을 할 수밖에 없다. 연영석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다른 영화 두 개를 번갈아가며 본 것 같은 느낌을 줬지만, 그 주제와 목적이 워낙에 묵직하고 비장하기에 영화 구성에 대한 아쉬움은 치열한 현실 앞에 어리광이다.

감독: 태준식

*다른 리뷰
씨네 21 : 이영진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51612